비 오는 날 배달, 첫날과 달랐던 점
비 온다는데 굳이 나간 이유
일기예보에 비 온다고 떠 있었다. 보통이면 "오늘은 쉬자" 했을 텐데, 그날은 좀 달랐다.
며칠 배달을 해보니 이상한 얘기를 들었다. 비 오는 날이 오히려 돈이 된다고. 나가는 라이더가 줄어서 콜이 밀리고, 그만큼 단가가 붙는다는 거였다. 진짜인지 궁금했다. 첫날 맑을 때 뛰어보고 시급이 딱 최저임금 언저리였는데, 비 오면 정말 달라지나.
그래서 우산 대신 우비를 꺼냈다. 창밖으로는 이미 빗줄기가 제법 굵어지고 있었다. 앱을 켜자마자 콜이 떴다. 맑은 날엔 몇 분씩 기다리던 콜이 켜자마자 뜨는 걸 보고, 아 소문이 사실이구나 싶었다. 근데 그 첫 콜을 수락하는 순간까지도, 이게 얼마나 고생길인지는 몰랐다.
우비 입고, 미끄러운 길을 걸었다
준비부터 첫날과 딴판이었다. 맑은 날엔 가방만 메고 나가면 됐는데, 이날은 챙길 게 많았다. 우비 위아래로 챙겨 입고, 폰은 물 들어갈까 봐 지퍼백에 한 번 싸서 거치대에 물렸다. 신발은 어차피 젖을 거 각오하고 그냥 나갔다. 이게 결정적 실수였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.
나가자마자 속도가 안 났다. 맑은 날이면 뛰어갈 구간도 바닥이 미끄러워 조심조심 걸었다. 특히 타일 깔린 상가 입구나 지하주차장 내려가는 경사가 무서웠다. 시야도 문제였다. 빗방울이 폰 화면에 튀어서 지도가 잘 안 보이고, 안경엔 김까지 서렸다.
콜 하나 처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눈에 띄게 늘었다. 맑은 날 20분대에 끝내던 걸 이날은 30분씩 걸렸다. 대신 콜은 계속 밀려 있어서, 한 건 끝나면 바로 다음 게 잡혔다. 쉴 틈은 없는데 몸은 배로 힘든, 그런 리듬이었다.
7건인데 첫날보다 더 벌었다
건수는 첫날(9건)보다 줄었다. 한 건 한 건이 느려졌으니까. 그런데 총수입은 오히려 첫날(38,400원)보다 많았고, 시급으로 따지면 10,470원 → 12,000원으로 올랐다. 우천 할증이 붙은 덕이다. 힘든 만큼 쳐준다는 게 숫자로 확인되니 묘한 기분이었다.
| 이날 총 배달 건수 | 7건 |
|---|---|
| 이날 총 수입 | 42,000원 |
| 맑은 날 대비 콜당 소요시간 차이 | 약 +6분 (24분 → 30분) |
| 시급 환산 | 약 12,000원 |
젖은 손가락이 화면을 안 눌렀다
제일 당황한 건 터치스크린이었다. 손가락이 비에 젖으니까 화면이 안 먹혔다. 배달 완료 처리를 해야 하는데 폰이 자꾸 헛돌아서, 우비 안쪽에 손을 문질러 물기를 닦고 나서야 겨우 눌렸다.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이게 매 건마다 시간을 잡아먹었다.
신발은 예상대로 완전히 젖었다. 두 시간쯤 지나니 양말까지 축축해져서 발이 무겁고 차가웠다. 우비로 몸통은 막았는데 정작 발과 바지 밑단은 무방비였다.
한 번은 아파트 계단에서 미끄러질 뻔했다. 다행히 난간을 잡아서 넘어지진 않았는데, 손에 든 음식이 쏠릴까 봐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. 이날 이후로 계단에선 무조건 한 손으로 난간을 잡았다.
음식 젖는 것도 신경 쓰였다. 보온가방이 완전 방수는 아니라서, 픽업할 때부터 봉투가 잘 닫혔는지 한 번 더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.
비 오는 날, 할 만한가
돈만 보면 비 오는 날이 맞다. 시급이 실제로 올랐으니까.
근데 그 돈이 그냥 오는 게 아니었다. 미끄러운 길 신경 쓰고, 젖은 손으로 씨름하고, 발이 축축한 채로 계속 움직여야 했다. 맑은 날 첫 배달이 '낯설어서' 힘들었다면, 비 오는 날은 '몸이 고돼서' 힘들었다. 종류가 다른 피로였다.
결론은 이렇다. 단가만 보고 무작정 나가는 건 말리고 싶다. 대신 장비만 제대로 갖추면 — 특히 발까지 방수하면 — 확실히 남는 장사다. 안전이 먼저고 돈은 그다음이라는 걸, 미끄러질 뻔하고 나서야 실감했다.
다음에 비 올 때는
- 우비보다 신발이 먼저다. 방수 신발이나 방수 커버부터 챙기자. 발 젖으면 하루가 두 배로 힘들다.
- 폰은 지퍼백이나 방수 케이스에. 젖은 손 대비해서 화면 닦을 마른 수건도 한 장.
- 계단·경사·타일은 무조건 속도 줄이고 난간 잡기. 몇 초 아끼려다 크게 다친다.
- 보온가방 봉투 밀폐 한 번 더 확인. 음식 젖으면 컴플레인은 결국 라이더 몫이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