사무직 15년차, 배달 라이더 첫 경험

퇴근하고 갑자기 배달을 나가기로 한 날

퇴근하고 소파에 누워서 배달 앱으로 저녁을 시켰다. 15년째 하는 짓이다. 회사 가서 일하고, 앱으로 밥 시키고, 밤엔 또 앱으로 뭘 시키고.

그날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. 문 앞까지 온 라이더를 잠깐 보다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. 나는 버튼만 누르는데 저 사람은 지금 뛰고 있네. 저 반대편은 대체 어떤 일일까.

부수입 생각이 아예 없던 건 아니다. 근데 솔직히는 그냥 궁금했다. 책상에만 15년 앉아 있던 내가 저길 뛰어들면 뭘 보게 될까.

그래서 금요일 저녁, 퇴근하자마자 앱을 켰다. 저녁 6시 반, 집 근처 늘 밥 시켜 먹던 그 동네. 며칠 전 주문해 둔 보온가방을 손에 들고 '온라인'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렸는데, 별것도 아닌 그 버튼이 이상하게 안 눌러졌다.

가입부터 첫 배달까지

준비 과정

가입이 생각보다 절차가 있었다. 신분증 등록하고, 안전 교육 영상을 끝까지 봐야 다음으로 넘어갔다. 중간에 건너뛰기가 안 돼서 그냥 다 봤다. 계좌 넣고 승인 기다리는 데 하루쯤 걸렸다.

장비랄 것도 없었다. 보온가방 하나, 폰 거치대, 보조배터리. 첫 배정 기다리는 그 시간이 제일 이상했다. 앱만 켜놓고 거실을 서성이다가, 콜 뜨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. 회사 15년 다니면서 이렇게 알림 하나에 긴장한 적이 있었나 싶었다.

보온가방·거치대·보조배터리를 늘어놓은 모습
첫 배달 나가기 전, 챙긴 거라곤 이게 전부였다.

첫 배달 과정

첫 콜은 동네 치킨집이었다. 픽업하러 갔는데 음식이 아직 안 나와서 5분쯤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. 이 짧은 시간이 은근히 뻘쭘하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. 다른 라이더들은 익숙하게 폰만 보고 있는데, 나만 괜히 두리번거렸다.

가방에 음식 넣고 출발까지는 좋았다. 문제는 도착해서였다. 아파트에 들어갔는데 동 번호가 순서대로 안 붙어 있었다. 101동 옆에 105동이 있고, 정작 내가 갈 103동은 단지 안쪽에 숨어 있었다. 103동을 찾느라 단지를 반 바퀴는 돈 것 같다. 겨우 찾아서 공동현관 앞에 섰더니, 이번엔 비밀번호를 몰라 문이 안 열렸다. 예상 도착 시간은 자꾸 줄어드는데 나는 문 앞에서 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. 그 몇 분이 어찌나 길던지. 결국 고객한테 전화해서 "지금 현관 앞인데 문이 안 열려요" 하고 비번을 받아 겨우 전달했다.

완료 버튼을 누르고 나니까, 고작 한 건인데 좀 웃기게도 뿌듯했다.

픽업하러 간 동네 치킨집 앞
첫 콜을 받은 동네 치킨집 앞.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.

9건 뛰고 받은 돈

첫날 총 배달 건수9건
첫날 총 수입38,400원
총 소요시간3시간 40분
시급 환산약 10,470원
앱 정산 화면 캡처 (개인정보 가림)
첫날 정산 화면. 9건에 38,400원, 개인정보는 가렸다.

몰라서 헤맸던 것들

몰라서 당한 게 많았다.

일단 콜을 언제 잡아야 할지 감이 없었다. 거리 대비 단가를 따질 줄을 몰라서, 나중에 보니 멀기만 하고 돈은 안 되는 걸 덥석 잡은 적이 있다. 3km 넘게 떨어진 곳인데 3,200원짜리 콜이었다. 갔다 오는 데만 20분 넘게 썼다. 그 20분이면 가까운 걸 두 건은 했을 텐데.

픽업 대기도 예상 밖이었다. 내가 아무리 빨리 가도 음식이 안 나오면 그냥 서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. 그 시간이 다 시급을 갉아먹는데, 처음엔 그걸 몰랐다.

그리고 다리. 이게 이렇게 아플 줄 몰랐다. 하루 종일 앉아만 있던 몸이라 세 시간 반 만에 종아리가 뻐근했다. 책상에서 오는 피로랑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피로였다.

할 만한가, 솔직히

할 만은 하다. 근데 "배달로 쏠쏠하게 번다"는 그 말은, 적어도 첫날의 나한테는 안 맞았다.

시급 계산해 보니 약 10,470원이었다. 헤매고 기다린 시간까지 다 낀 숫자니까 익숙해지면 오르겠지. 그래도 첫날 숫자만 놓고 보면 최저임금 언저리였다.

그런데 이상하게 후회는 안 들었다. 시간에 매여 있지 않고, 몸 쓰니까 운동 겸 되고, 무엇보다 매일 누르던 그 '주문' 버튼 뒤가 어떤 세계인지 직접 봤으니까. 효율만 볼 사람한테는 안 맞다. 짬 내서 몸 쓰며 소소하게 벌고 싶은 사람이면 한 번쯤 해볼 만하다. 하루 뛰어보고 든 솔직한 생각이다.

다음에 또 나간다면

- 첫날은 무조건 아는 동네에서. 길 헤매는 시간이 곧 돈이다.

- 보조배터리 꼭. 앱에 내비에 충전까지 하면 배터리 순식간에 나간다.

- 공동현관·동호수는 출발 전에 확인. 도착해서 헤매는 게 제일 시간 잡아먹는다.

- 급하다고 아무 콜이나 잡지 말 것. 첫 30분은 거절해도 되니까 단가랑 거리 보고 고르자. 첫날 이거 하나만 알았어도 시급이 달랐다.